[교육] 현실이 아닌 미래를 키우는 것입니다.
Journalist : changjo | Date : 06/11/28 17:35 | view : 320159     
 

교육은 우리나라가 근대화를 지나는 과정에서
현대사회에 가장 부정적인 영향을 준 요소중에 하나이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세계가 알아준다.
그러나, 이 교육열이 현대사회에 어두운 그림자를 주고 있다는 지적을 아니할 수 없다.

한 마디로 사람들은 교육의 자리를 돈으로 바꾸었으며,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경제성장과 그 모든 가치를 맞바꾸었다.

거기에는 교사도 없고 철학도 없고
무엇보다도 한 생명이 없다.

생명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키워지는 것이다.
즉, 생명은 그 존재의 고유한 '그 어떠함'이 있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은 그 자리를 잃고
자본의 논리에 맞는 인간형을 목표삼고
부단히 그 틀로 찍어내듯이 투자하고 열을 올리고 있다.

새삼스레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을 열거하는 것은 옳지않다.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교육이 잃어버린 눈과 마음과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교육은 무엇보다도 처음도 사람이요, 나중도 사람이다.
그래서, 교육의 출발점은 사람을 어떻게 보는가로부터 출발한다.

우리가 안고 있는 교육의 문제점은
그 출발점이 사람에게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사회의 출발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에 있다.
쉽게 말하면, 사회에 사람을 맞추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들은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이버(R. Nieur)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는 [도덕적 인간, 비도덕적 사회]라는 책을 통해서,
개인이 아무리 도덕적으로 살고자 해도
그러한 노력은 비도덕적인 사회의 환경 속에서 그 열매를 맺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사회의 교육열은 아예 그 사회속에 뭍히는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다.
즉, 개인적인 차원의 도덕교육까지도 잃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해답은 무엇일까?
해답은 어떻게 보는가에 달려있다.
니이버의 시각은 비도덕적 사회환경을 무시하고
개인의 도덕을 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개인을 객체로 보지 않고 공동체로 본 것이다.
다시 말해서, 개인을 유기적인 관계성 속에서 인식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교육도 새로운 시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사회 각처에서 개혁을 말하고 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개혁도 유기적이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
유기적이라함은 어떤 정해진 틀을 만들어 그 속에 집어넣는 방식과는 다르다.

생명체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자라는 것처럼
공동체도 자라게 해야 한다.
그것이 개혁이든 성장이든 자라게 해야 한다.

교육은 이와 같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공동체가
어떻게 자라야 하는지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교육은 '대안적 공동체'를 키우는 작업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교육은 오히려 비현실적이어야 한다.
미래의 이상향을 바라봐야 그렇게 교육할 수 있다.
그 미래가 없으면 우리들은 아이들을 '키울수 없다'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은
과거와 현재라는 괘적(paradigm)에 파뭍혀서
우리 아이들까지도 그 상자 속에 밀어 넣고 있는 것이다.
'현실'이라는 틀에 맞는 인간형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교육은 현실을 맞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살아갈 미래사회를 키우는 것이다.
스피노자의 말처럼 현실이 종말적 상황일지라도
교육만큼은 미래의 '대안적 공동체'라는 나무를 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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